[이학부]故 김봉균 박사 회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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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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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덕근 (이학부 정회원, 서울대학교 교수)
 강석(彊石) 김봉균(金鳳均) 박사는 우리나라 제1호 고생물학자로 한국에 고생물학의 씨앗을 뿌린 학자이다. 그는 단지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활발한 국내외적 학술활동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과학 수준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후학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서 한국고생물학회를 창설하여 한국의 고생물학을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점은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하겠다.
1. 사회적 배경
1) 출생과 가정
 김봉균은 1920년 10월 19일 부친 김상렬(金湘烈) 선생과 모친 이성실(李成實) 여사의 3남으로 평안남도 강동군 삼등면 송가리 296번지에서 태어났다. 송가리는 평양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그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가정으로 좋은 돌지붕 집이었다. 그의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김봉균은 음악을 전공한 김영란(金英蘭)과 결혼하여 3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양승영(경북대 명예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김봉균의 가정은 매우 화목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집안에서 항상 밝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음악을 전공한 부인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가장으로서의 위엄보다도 항상 유머를 즐겼던 그의 천성에 더 무게를 둘 수 있겠다. 그가 무척 사랑했던 큰 아들이 군복무 중 세상을 떴을 때도 겉으로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강의와 연구에 더욱 진력하였다고 한다. 
 김봉균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공한 사람이었고, 퇴임 후에도 즐거운 생을 유지하였다. 그는 매우 건강한 편이었는데, 이는 그가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매우 낙천적인 성격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과일 중에서 사과를 무척 좋아해서 항상 곁에 사과를 가까이 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하지만 만년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2003년 4월 20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2) 교육
 김봉균은 어렸을 적 매우 우수했던 학생으로 명문인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자랐던 마을 부근에서 탄광이 개발된 것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었는지 그는 대동공업전문학교에 진학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살아가면서 오랜 친구가 될 정창희(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게 된다.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대북(台北)제국대학 이학부 지질학과에 입학하여 수학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경성대학 이공학부(지질학 전공)로 편입하여 1946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모교인 대동공업전문학교 후신인 평양공업대학에 지질학과를 창설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하하여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그곳에서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임하다가 1957년 서울대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상을 돌이켜 보면, 전쟁이 끝난 직후이기 때문에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경제적으로도 무척 어려웠던 시기였다. 따라서 대학에서 학문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국가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젊은 학자들에게 해외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던 김봉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1962년 영국 Imperial College에서 1년을 수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지질학 중에서 고생물학을 자신의 주 전공으로 정하는 일생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고생물 중에서도 미화석인 유공충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하였고, 귀국 후 더욱 유공충 연구에 정진하여 1965년 일본 동북대학(Tohoku University)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생물학 전공의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학위논문이었던 “포항지구 제3기(마이오세)의 층서학적 및 고생물학적 연구”는 당시 포항지역에서 산출되었던 유공충 화석에 대한 내용을 집대성한 논문으로 지금도 후학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2. 과학자로서의 삶
 대학교수의 중요한 임무는 크게 교육, 연구, 사회봉사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창기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이 그러했듯이 김봉균도 고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터전을 닦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였다.
1) 교육활동
 김봉균은 매우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아침에도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왔고 항상 늦게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주 담당 교과목으로 고생물학개론, 고생물학각론, 미고생물학, 지사학 등이 있었는데, 강의내용은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충실하였다. 김봉균은 다혈질적인 성격이어서 학생들이 잘못을 할 경우 무섭게 혼내기도 잘 하였지만, 뒤끝이 없어서 학생들이 잘못한 일들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도 학생들과 함께 차를 나누면서 담소하는 것을 즐겼다.
 장순근 박사(극지연구소)의 회고에서 당시 김봉균의 면모를 읽어볼 수 있다. 장순근이 대학 2학년 고생물학개론 시간에 무의식 중에 한쪽 다리를 책상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 모습을 본 김봉균은 흥분된 목소리로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 일로 걱정이 많았던 장순근이 선배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은 지난 일을 빨리 잊으시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나중에 장순근이 고생물학을 자신의 전공으로 택한 것을 보면, 그가 지난 일들에 대해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모든 자연과학 분야가 시작하는 단계였고, 아직은 학문을 전문적으로 하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때였지만, 고생물학 연구실에는 대학원생들이 끊이지 않고 입학했었다. 이는 아마도 김봉균의 강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미 졸업을 한 제자들 중에서 대학에 교편을 잡고 있던 사람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전공으로 고생물학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에서 당시 김봉균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 학자로는 유환수(전남대), 윤 선(부산대), 양승영(경북대) 등이 있다. 특히 양승영은 자신이 고생물학을 전공으로 정한 것은 김봉균의 직접적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양승영이 1970년대 초 외국 유학을 준비할 때 일본 규슈대학의 마츠모도 교수에게 가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김봉균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예를 지금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복도에 진열되어 있는 화석 표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석 설명서를 보면 기증자 또는 채집자의 이름이 대부분 김봉균으로 되어 있다. 화석의 산출지역도 국내보다는 오히려 유럽지역이 더 많은데 여기에서 김봉균의 놀라운 능력을 엿볼 수 있다. 1962년 영국에서 1년의 연수가 끝나고 귀국하기에 앞서 그는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엄청난 양의 화석 표품을 양도받을 수 있었다. 사실 화석 표품을 양도받는 일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적 여건으로서는 그 표본을 한국으로 싣고 오는 일도 만만치 않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김봉균은 그 특유의 인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수천점의 화석 표본을 서울대학교로 가지고 왔다. 당시 교육 자료가 거의 없었던 한국 실정에서 그  화석 표본은 후학들의 교육에 귀한 자료가 되었다. 그 후 50년이 흘렀지만, 서울대학교에 그 표본을 능가하는 수집품은 없다.
 1970년대 중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많은 지원이 있었지만, 당시 지질학 분야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 무렵 김봉균은 지질학 분야의 홍보를 위하여 많은 기업체를 설득하여 ‘산업지질전시회’를 열었는데 무척 좋은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김봉균은 그 활동을 연구실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의 진로를 다양한 분야로 넓히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2) 연구활동
 김봉균은 30여년의 연구활동을 통하여 총 47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비교하면 논문의 수가 적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과 지질학 분야에서 논문을 발표하는데 드는 시간과 공력을 감안하면 놀라운 연구성과라고 하겠다. 47편의 논문 중에서 원저 논문은 39편이고, 보고서는 8편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원조사 분야 6편, 도폭지질조사 5편, 지질학 분야 6편, 고생물학 분야 30편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지질학은 초창기에 모두 자원과 관련된 연구가 많았는데, 따라서 김봉균의 초기의 연구서도 대부분 자원과 관련된 지질학적 연구가 많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발표된 연구는 주로 탄광에 관한 연구로 함백탄광과 장성탄광을 조사하였고,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었던 도폭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1961년에 시행되었던 ‘태백산지구지하자원조사사업’은 우리나라 지질학이 한 단계 도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김봉균은 태백산지구지하자원조사에 핵심연구원이었다. 그 후, 우리나라 각 지역에 대한 도폭지질조사가 계속 이어졌는데, 김봉균의 주도아래 발간된 지질도폭으로 서천(1963), 동복(1966), 의성(1977), 대율(1981), 안동(1988) 등이 있다.
 김봉균은 1965년 일본 동북대학에서 “The stratigraphic and paleontologic studies on the Tertiary (Miocene) of the Pohang area, Korea”라는 논문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연구영역을 고생물학 분야로 집중하게 된다. 이 논문은 포항지역 제3기층에서 산출되는 유공충 화석에 대한 연구로 우리나라 제3기층의 생층서와 퇴적환경 연구에 효시가 되었다. 그 후, 김봉균은 제주도와 현생퇴적물에서 산출되는 유공충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아울러 다른 생물에 대한 연구로 연구영역을 확대하는 일에도 노력하였다. 예를 들면, 삼엽충(1969), 식물화석(1970, 1982, 1984), 연체동물(1974, 1978), 완족동물(1984) 등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1984년 저명한 고생물학 학술지인 Palaeogeography,Palaeoclimatology,Palaeoecology에 발표한 “Cenozoic biostratigraphy of South Korea”는 김봉균의 우리나라 신생대층 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봉균의 신생대층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반도의 신생대층은 대부분 포항분지에 분포한다. 지역적으로는 크게 다섯 지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시대적으로는 하부의 양북층군과 상부의 연일층군으로 구분된다. 양북층군은 육성층이며, 연일층군은 해성층으로 다양한 해양생물 화석이 산출되었다. 연일층군에서는 3개의 유공충 생층서대, 6개의 연체동물 생층서대, 4개의 규조 생층서대, 2개의 규질편모충 생층서대, 3개의 초미화석 생층서대가 정립되었다. 이 화석군집을 바탕으로 밝혀진 연일층군의 지질시대는 중기 마이오세이다. 플라이오세 지층은 제주도의 서귀포층에서만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따뜻한 바다의 조간대 환경에서 쌓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연구업적으로 김봉균은 1982년 모든 학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대한민국 학술원의 정회원으로 피선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3) 사회봉사활동과 수상
 김봉균의 활동은 단지 연구와 교육에 국한되지 않고,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통하여 국가에 봉사하였다. 학술적으로 그는 활달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대한지질학회 회장(1976-1980), 한국지구과학교육회 회장(1975-1977), 한국고생물학회 회장(1984-1990)으로 학계 발전에 기여하였고, 국제적 활동도 활발하여 태평양과학협회 지구과학분야 상임위원(1966-1970), IGCP조직위원회 한국대표(1976-1986), 동남아지구과학교육협회 사무총장(1977-1981)등을 역임하였다.
 교내적으로는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교수들의 복지개선에 노력하여 관악캠퍼스에 교수아파트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그 밖에 박물관과 각종 교내 연구소의 운영위원을 역임하면서 학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1970-1975)과 한국자연보존협회 회장(1988-1991)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연과 문화재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였고, 그밖에 국방부 자문위원(1973-1986), 농수산부 자문위원(1982-1983),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이사(1977-1980), 한국과학재단 연구개발심의위원(1980-1981), 한국석유개발공사 자문위원(1980-1982),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사(1981-1984), 국립과학관 자문위원(1983-1986)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쳤다. 국제적 활동도 활발하여 많은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논문을 발표하였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자연과학분야 위원장(1981-1985), 태평양과학회의 조직위원(1984-1986)으로 활약하였다. 
 위와 같은 다양한 학술활동을 인정받아 김봉균은 서울시문화상(1965), 보국훈장 광복장(1974), 운암지질학상(1976), 과학기술상 본상(1981), 대한민국 학술원상(1989) 등을 수상하였다.
3. 맺는말
 김봉균은 8․15광복과 6․25동란 등 사회적으로 어려운 여건 하에서 학문을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에 새로운 학문인 고생물학의 씨앗을 뿌렸다.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학계에 입문하여 1957년 서울대학교로 부임하면서 학자로서의 자리매김을 굳게 하였다. 1965년 한국 최초의 고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1957년부터 1986년까지 30년간 양성한 그의 제자는 우리나라 지질학과 고생물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봉균의 제자로 학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담당했던 학자로 유환수(전남대)는 규질 편모충, 윤 선(부산대)은 신생대 연체동물 화석, 양승영(경북대)은 중생대 연체동물 화석, 이영길(경북대)은 규조화석, 장순근(극지연구소)은 유공충, 최덕근(서울대)은 삼엽충, 고영구(전남대)는 규질 편모충 등을 연구하여 고생물학의 학문 영역을 다양화하는데 기여하였다. 현재는 이들 후진 학자들에 의하여 양성된 젊은 학자들이 학계의 주축을 이루면서 한국 고생물학의 위치를 세계적 수준으로 올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표 1. 김봉균의 분야별 발표 논문수, 연구 기간 및 주요 공저자명
강석 김봉균박사 연보
1920. 10. 19.  부친 김상렬씨와 모친 이성실씨의 3남으로 평안남도 강동군 삼등면 송가리 296번지에서 출생
1934. 04. - 1939. 03. 평양고등보통학교 입학 및 졸업 
1939. 04. - 1941. 12. 대동공업전문학교 입학 및 졸업 
1942. 09. - 1945. 08. 일본 대북제국대학 이학부 지질학과 입학 및 졸업 
1946. 05. - 1946. 07. 경성대학 이공학부(지질학전공) 졸업
1951. 11. - 1957. 10. 육군사관학교 교수
1953. 03. - 1955. 10.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
1954. 03. - 1960. 10. 한양공과대학 강사
1955. 10. - 1957. 10.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대우교수
1957. 10. - 1960. 06.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전임강사
1960. 06. - 1962. 09.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조교수
1962. 08. - 1963. 08. 영국 런던대학교 임페리얼대학 연구교수
1962. 09. - 1966. 07.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부교수
1964. 07. - 1965. 03. 일본 동북대학 이학부 지질고생물학과 연구교수
1965. 03. 20.  서울시문화상(자연과학분야) 수상
1965. 04. 20.  이학박사 학위수여(일본 동북대학)
1966. 07. - 1986. 02.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
1966. 08. - 1970. 08. 태평양과학협회 지구과학분야 상임위원
1967. 06. - 1967. 07. 제3차 ECAFE 아시아 대륙붕지역 광물자원 공동탐사위원회 한국대표
1968. 09. - 1968. 09. 그리스 제2차 해양용식 및 침식학회 참가(분과위원장)
1970. 03. - 1972. 03. 대한지질학회 부회장
1970. 04. - 1975. 09. 문공부 문화재위원
1971. 07.   제8차 ECAFE 회의(필리핀 마닐라) 한국대표
1973. 04. - 1986. 02. 국방부 육군본부 자문위원
1973. 08.  국제해양개발회의(일본 도쿄) 참가 논문 발표
1974. 04. 25.  보국훈장 광복장 수상
1974. 08.  환태평양에너지회의(미국 호놀루루) 참가 논문발표
1975. 05. - 1977. 08. 한국지구과학교육회 회장
1976. 02. - 1980. 02. 대한지질학회 회장
1976. 03. - 1978. 03. 서울대 사대부설 과학교육연구소 운영위원
1976. 05. - 1980. 05.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
1976. 05. - 1986. 02. IGCP-114 조직위원회 한국대표
1976. 08.   제24차 국제지질학회(IGC) 한국대표로 참가
1976. 11. 09.  운암지질학상 수상
1977. 02. - 1980. 02. 자원개발연구소(현 지질자원연구원) 이사
1977. 10. - 1981. 11. 동남아지구과학협력기구 사무총장
1978. 03. - 1978. 09. 미국 스탠포드대학 지질학과 방문교수 
1978. 11.   동남아 지구과학협력기구(인도네시아 반둥) 조직위원회 한국대표
1978. 12.  동남아 지질 및 광물자원 국제대회(태국 방콕) 참가
1979. 04.   한중 지질 및 층서학 세미나(중국 타이베이) 참가
1979. 05.  IGCP-114 (일본 도쿄) 참가 논문 발표
1979. 06. - 1981. 06. 서울대학교 자연과학종합연구소 운영위원
1979. 08.  동남아 지구과학협력기구(인도네시아 반둥) 조직위원회 한국대표
1980. 01. - 1981. 03. 한국과학재단 연구개발심의위원회 위원
1980. 04. - 1982. 04. 자원개발연구소 대륙붕 자원탐사 자문위원회 위원
1980. 07.  제25차 국제지질학회(프랑스 파리) 한국대표
1981. 03. - 1984. 01.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사
1981. 03. - 1985. 03.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자연과학분과 위원장)
1981. 04. 21.  과학기술상 본상(대통령상) 수상
1981. 11. - 1986. 02. 동남아 지국과학협력기구 이사 한국대표
1982.   한미공동연구 수행차 북일리노이대에서 1개월간 연구
1982. 02.  제16차 태평양과학협회(뉴질랜드) 참가 논문 발표
1982. 03. - 1986. 02. 경주 고적발굴조사 지도위원
1982. 03. - 1986. 02. 서울대학교 박물관 운영위원
1982. 03. - 1983. 05. 농수산부 자문위원
1982. 06. - 2003. 04.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
1983. 01. - 1986. 02. 광업진흥공사 시추심의위원
1983. 03. - 1986. 02. 한국자연보존협회 이사
1983. 03. - 1986. 02. 과학기술처 국립과학관 기술자문위원회 위원
1983. 10.  동남아 석탄지질 workshop 서울 개최
1983. 11. - 1986. 02. 동력자원연구소 한국남부대륙붕 석유자원평가 자문위원
1984. 03. - 1986. 02. 태평양과학협회 제16차(1987) 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1984. 04.  동남아 지질 및 광물자원 국제대회(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지구과학협력기구 조직위원회 한국 대표
1984. 06. - 1990. 02. 한국고생물학회 회장
1984. 06. - 1986. 06. 대한지질학회 이사
1984. 08.  동남아 석탄자원 세미나(호주 시드니) 참가 논문 발표
1985. 01. 일본 과학진흥재단 초청 연구 및 과학계 시찰
1985. 08.   한미 공동연구 수행차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구
1988. 02. - 1991. 02. 한국자연보존협회 회장
1989. 09. 20. 대한민국 학술원상(자연기초부문) 수상
강석 김봉균 박사 논문목록
1. 김봉균, 1957, 함백탄광(대전-단곡간)의 지질개요. 지질광상조사연구보고, v. 1, p. 129-135.
2. 손치무․정창희․김봉균․이대성․이종혁, 1958, 장성탄전의 지질-시추기점 결정을 위하여. 지질광상연구보고 2, p. 135-144.
3. 김봉균, 1959, 한국식물화석목록. 식물학회지, v. 2, p. 21-38.
4. 김봉균․손석진, 1963, 서천 지질도폭 및 설명서(1/5만). 국립지질조사소, 20 p.
5. 김봉균, 1964, 연천 및 포항지구의 현무암에 대한 고지자기 연구. 지질학회지, v. 1, p. 50-56.
6. Kim, B.K., 1965, The stratigraphic and paleontologic studies on the Tertiary (Miocene) of the Pohang area, Korea. Seoul National University Journal (A), v. 15, p. 32-121.
7. 김봉균․박병권, 1966, 동복 지질도폭 및 설명서(1/5만). 국립지질조사소, 47 p.
8. Kim, B.K. and Park, Y.A., 1967, The origin of the so-called Punchbowl. 지질학회지, v. 3, p. 61-66.
9. Kim, B.K. and Park Y.A., 1968, Outlines of the geology on Kanghwa Island. 지질학회지, v. 4, p. 29-37.
10. 김봉균, 1968, 감포, 울산부근에 발달하는 역암층의 지질시대에 관하여. 지질학회지, v. 5, p. 44-45.
11. Kim, B.K., 1969, A stratigraphic and paleontologic study of the Sinyangri Formation in the vicinity of Sinyangri, the Jeju Island.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5, p. 103-121.
12. 김봉균, 1969, 예미 북서부에서 밝혀진 몇 가지 지질학적 사실. 지질학회지, v. 5, p. 229-241.
13. Kim, B.K., 1969, A study of several sole marks in the Haman Formation.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5, p. 243-258.
14. 김봉균, 1970, 한국의 신제3기 퇴적층에 관한 연구. 지질학회지, v. 6, p. 1-20.
15. Kim, B.K., Kim, S.W., and Kim, J.J., 1970, Foraminifera in the bottom sediments off the southwestern coast of Korea. Technical Bulletin, ECAFE, v. 3, p. 147-163.
16. 김봉균, 1970, 삼척군 북평읍 삼화사 부근의 석회석 광상조사. 한국의 광상, v. 3, p. 173-180.
17. Kim, B.K. and Asama, K., 1970, Permian Sphenophyllales from the Eunseong Coal Mine. Bulletin of the Natural Science Museum of Tokyo, Japan, v. 13, p. 319-332.
18. Kim, B.K. and Han, J.H., 1971, Foraminifera in the bottom sediments off the southeastern coast of Korea.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7, p. 11-36.
19. 김봉균, 1972, 서귀포층의 층서 및 고생물학적 연구. 손치무교수 송수기념논문집, p. 1-18.
20. 김봉균, 1974, 제주도에 발달하는 사구층의 고생물학적 연구. 지질학회지, v. 10, p. 95-108.
21. Kim, B.K., Noda, H., and Yoon, S., 1974, Molluscan fossils from the Miocene Eoil Formation, Gampo and Ulsan districts, southeastern-side of Korea. Transactions and Proceedings of the Palaeontological Society of Japan, v. 93, p. 266-285.
22. 김봉균․정창희․김수진, 1975, 경북 영일지역에 발달하는 갈탄층의 층서적 연구. 지질학회지, v. 11, p. 240-252.
23. 김봉균, 1976, 충남탄전의 지질 및 고생물학적 연구. 지질학회지, v. 12, p. 124-143.
24. 장순근․김봉균, 1976, 진도 남쪽 마로해에 분포하는 유공충. 지질학회지, v. 12, p. 31-54.
25. 김봉균․최덕근, 1977, 포항지역 제3기층의 저서성 유공충에 의한 생물층서학적 분대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논문집, v. 2, p. 155-168.
26. 김봉균․최덕근, 1977, 포항지역 제3기층 저서성 유공충의 species diversity. 지질학회지, v. 13, p. 111-120.
27. 김봉균․이유대․양승영, 1977, 의성 지질도폭 및 설명서. 자원개발연구소, 33 p.
28. Kim, B.K. and Yoon, S., 1978, Some molluscan fossils from the uppermost part of the Neogene deposits of the Pohang basin, Korea.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14, p. 1-12.
29. Kim, B.K., 1979, Correlation of Miocene deposits in southeastern Korea. Memoirs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China, v. 3, p. 93-101.
30. 김봉균․정창희․김수진․양승영, 1981, 대율 지질도폭 및 설명서. 한국동력자원연구소.
31. 김봉균․정창희․박봉순․백광호, 1981, 한국의 화석에너지자원 조사연구. 지질학회지, v. 17, p. 34-52.
32. 김봉균, 1981, 중생대 및 신생대의 함탄층의 층서. 지질학회지, v. 17, p. 112-116.
33. 김봉균․정창희․고인석․백광호․고영구, 1982, 우리나라 신제3기층의 미고생물학적 및 퇴적암석학적 연구. 지질학회지, v. 18, p. 19-36.
34. Kimura, T., Kim, B.K., and Ohana, T., 1982, Coreanophyllum varisegmentum gen. et sp. nov. from the Daedong Supergroup, Korea. Proceedings of the Japanese Academy, v. 58(B), p. 152-155.
35. Kimura, T., Kim, B.K., and Ohana, T., 1982, Neocalamites carrerei (Zeiller) Halle (Equisetales) found in situ from the Daedong Supergroup, Korea. Proceedings of the Japanese Academy, v. 58(B), p. 156-159.
36. 윤혜수․김봉균, 1983, 신제3기 포항분지 동부(칠포 부근)의 층서. 지질학회지, v. 19, p. 252-257.
37. 김봉균, 1983, 강원도 삼척군 북평부근에서 발견된 Dicerorhinus kirchbergensis Jaeger. 학술원논문집 자연과학편, v. 22, p. 91-144.
38. Cheong, C.H., Kim, B.K., and Lee. C.Z., 1983, Permian fusulinids from the limestones of the Bamchi Formation, Yeongweol Coalfield, Korea.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19, p. 203-226.
39. Kim, B.K. and Ling, H.Y., 1983, Miocene archaeomonads from Pohang area, Korea.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19, p. 247-251.
40. Kim, B.K., 1984, Cenozoic biostratigraphy of South Korea. Palaeogeography, Palaeoclimatology, Palaeoecology, v. 46, p. 85-96.
41. Choi, D.K., Bong, P.Y., and Kim, B.K., 1984, Tasmanitids from Idong and Pohang Formations (Miocene) of Korea.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20, p. 215-221.
42. Kimura, T. and Kim, B.K., 1984, Geological age of the Daedong flora in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phytogeographical significance in Asia. Proceedings of the Japanese Academy, v. 60(B), p. 1337-340.
43, Kim, B.K., 1984, Pliocene brachiopods from the Seogwipo Formation of Jeju Island, Korea. Journal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Korea, Natural Sciences Series, v. 23, p. 167-194.
44. 김봉균․이하영․김수진․정지곤, 1988, 안동도폭 지질보고서. 한국동력자원연구소.
45. Kim, B.K. and Choi, D.K., 1988, Mud turtle remains from the Dogogdong Formation (Miocene), Yeonghae area, Korea. Journal of the Paleontological Society of Korea, v. 4, p. 160-167.
46. Kim, B.K., Cheong, C.H., and Choi, D.K., 1992, Occurrences of Sphenothallus ("Vermes") from the Mungog and Yobong formations, Yeongweol area, Korea.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v. 26, p. 454-456.
47. Cheong, C.H., Kim, B.K., and Choi, D.K., 1993, Invertebrate fossils from the upper part of the Dumugol Formation of Dongjeom area, Korea. Journal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Korea, Natural Sciences Series, v. 32, p. 1-21.
저서 목록
1. 자연과학개론. 1956, 박영사
2. 끝없는 집념 –지구- 1960, 과학기술진흥재단
3. 지구과학개론(공저). 1962, 교학사
4. 고생물학(공저). 1992, 우성출판사
번역서 목록
1. 지사학(역서). 1959, 대학교재
참고 문헌
1. 김봉균. 강석 김봉균 교수 정년기념논문집,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질과학과 동창회, 1986
2. 최덕근. 김봉균 교수의 약력과 연구업적. 고생물학회지 제20권 제2호. 2004
3. 양승영.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은사 강석 선생님. 고생물학회지 제20권 제2호. 2004
4. 장순근. 김봉균 교수님 기억. 고생물학회지 제20권 제2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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