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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부] 故 윤능민 박사 회상록

이름 |
관리자
Date |
2011-12-07
Hit |
5495


집필자 : 차진순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필자는 196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중퇴하고, 다시 1967년에 서강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하여 1975년에 졸업하였다. 대학원 화학과에 진학하여 윤능민 교수의 지도아래 1977년에 이학석사 학위를, 1980년 2월에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0년 3월에 영남대학교 화학과에 조교수로 부임한 후, 1982년부터 2년간 그리고 1989년부터 1년간  미국 Purdue대학교 화학과 Herbert C. Brown 교수 (1979년도 노벨화학상) 연구실에서 연구하였다. 이어 1986년에 일본 Hokkaido대학교 A. Suzuki 교수 (2010년 노벨화학상) 연구실 방문교수 및 1996년에 영국 Wales대학교 A. Pelter 교수 연구실 방문교수로 활약하였다. 2000년에는 영남대학교 중앙기기센터 소장, 2004년부터 2년간 이과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2011년 8월 말에 정년퇴임하였다. 교수 재임기간 중 2003년에 대한화학회 총무부회장 및 2007년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대한화학회 자문위원과 재단법인 한국화학회관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연구영역은 ‘붕소 및 알루미늄 화합물의 개발 및 이를 이용한 유기합성법 개발’이며 200여 편의 관계 연구논문을 게재 발표하였다.

사회적 배경

  中堂 尹能民 교수는 1927년 10월 21일 대동강 하류 강기슭 마을인 평안남도 해압면 중화군 요포리에서 坡平 尹文麒 공과 全州 李貞夏 여사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선친께서는 평양적십자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였다. 선생은 1940년 3월에 평양 성남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에 평양 제2중학교(구 평양고등보통학교)를 33회로 졸업하였다. 당시 일본제국 군복을 입고 찍은 졸업사진이 무척 이색적이다. 선생은 선친께서 자주 왕진을 다니면서 무척 바쁜 생활을 하셨고, 더군다나 밤늦게나 새벽에도 집으로 찾아오는 응급환자를 맞이하는 등 의사로서의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자신은 절대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선생은 홀로 집을 떠나 경성대학(현 서울대학교) 예과에 입학하였고 1947년 3월에 문리과 대학 화학과에 진학하였다. 부모님께서 그렇게도 의사가 되기를 열망하셨지만 선친의 힘든 삶에 회의를 느낀 선생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게 바로 선생이 화학자의 길로 걸어가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니 참으로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생께서 평양을 떠나 서울대학교 예과를 다니고 있을 때인 해방 직후 북한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물자를 강탈하고 아녀자를 겁탈하는 등 그 행패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져 가고 있었다. 소련에서 내세운 김일성 체제에 반대하는 조만식의 민족주의 세력과 아귀다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이북에 공산주의 체제가 강화되고 38선 일대 경비가 엄해지고 있어 가족과의 왕래는 차츰 어려워져 가고 있었는데, 급기야는 4학년 때인 1950년에 발발한 6.25 동란은 선생으로 하여금 가족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안겨주었고 경제적 지원도 끊기는 청천벽력 같은 시련을 당하게 만들었다. 당시 피난민 생활은 다들 힘들었지만, 특히 유복한 생활을 하다가 가족과 생이별하고 홀로 단신이 된 선생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선생은 평소에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시는 과묵한 성격으로 이때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도 만날 길 없는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 버렸으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둘째 치고라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참으로 크고 깊었음을 어림잡을 수 있다. 평소 평양냉면을 즐겨 드시고 약주를 벗 삼으며 고등학교 동창인 작곡가 길옥윤 씨의 음악을 좋아했던 생전의 모습에서 얼마나 향수에 젖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선생은 그래도 맥을 이었던 임시 교사에서 학업을 마치게 되고 드디어 1951년 3월에 문리과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선생에게는 행운이 따라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당시 부산에 임시로 이전해 있었던 국방부 과학기술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업할 수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화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3년간 근무한 후 이어서 카톨릭의과대학에 교수로 임명되어 9년간 (1954-1963) 화학을 가르치게 된다. 해방 후 좌우익 간의 정치 싸움의 혼란에 이어 전쟁으로 전 국토가 산산조각이 나 극도로 피폐해져 있던 1950년대 초에는 화학을 제대로 전공한 학자가 별로 없어서 대학 학부 졸업생이 교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종전 후 미국의 원조에 의해 사회가 서서히 안정되어 가면서 교육에 뜻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해외유학을 가기 시작하였다. 선생께서는 어려웠던 전쟁와중에도 연구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고 이어 대학교수라는 매력적인 위치에 올라 있었지만 학사학위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입지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존경 받는 학자가 되겠다는 포부에 적당히 안주할 수 없었다.  와신상담 끝에 카톨릭의과대학을 떠나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선생은 1963년 초 만 36세의 만학의 나이로 미국 Indiana주 West Lafayette에 위치한 Purdue대학교 (학교명이 설립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Indiana주의 주립대학교로, 미국에서 공과대학 출신 졸업생이 가장 많은 공학계 중심 대학교이다.) 화학과로 유학을 떠나 Herbert C. Brown 교수의 지도아래 대학원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Brown 교수는 붕소(B)와 알루미늄(Al) 수소화물을 이용한 유기작용기의 환원반응과 불포화 탄화수소화합물에 붕소수소화물을 첨가하는 반응의 발견으로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던 중견학자로서 유태인계 미국인이다. 선생은 ‘선택환원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는데, Brown 교수의 연구테마는 모두 다 독보적인 선도연구 분야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 분야의 개척자적인 업적을 남기게 된다. 매사에 섬세하고 꼼꼼하면서 끈기 있는 선생의 성격에 잘 맞는 연구분야이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유태인은 여러 가지로 한국인과 유사한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어서 스승에 대해 예의 바르고 공손하며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는 선생에 대해 Brown교수는 각별한 신뢰성을 지니고 있었다. 1979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Brown 교수가 수상 강연회에서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등 여러 면에서 선생을 아끼고 우대하는 면면을 보아도 두 분의 돈독한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선생은 대학원 과정 중에 무려 9편의 논문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화학관련 학술지(7편은 미국화학회지인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 2편은 미국 유기화학회지인 Journal of Organic Chemistry)에 게재 발표하고 드디어 1968년에 이학박사 학위(Ph. D)를 취득하였다. 공부를 시작한지 5년만이고 선생의 연세가 만 41세가 되는 해이다. 참으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1969년 봄에 서강대학교 화학과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본 화학과에는 최상업 교수가 선임으로 있었는데, 역시 선생의 지도교수인 Brown 교수의 제자로서 무기화학을 전공한 분이다. 아마 동일한 연구실 출신 후배인 선생을 동료교수로 초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강대학교는 카톨릭 계통의 예수회 재단 학교로서 신부가 총장이고 모든 교육 시스템을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어 일명 ‘서강고등학교’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는 대학교로 유명하다. 거의 매 수업시간마다 강의 시작 전에 5-10분간의 퀴즈시험을 친다. 학점제도가 워낙 엄격하고 과제물이 많아 학생들은 다른 데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이러다 보니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도 이에 못지않은 긴장상태로 교육준비를 하고 학생을 지도한다. 교수가 힘이 들어서 코피를 흘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정도이었다. 필자가 학부시절에 선생께서 강의하는 ‘유기화학’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선생께서는 수업시간 10분 전에 미리 강의실에 들어와서는 칠판 상단에 그날 강의할 화학반응식을 적어 놓고 학생들을 기다리고는 강의시간 벨이 울리면 1분이 아깝다고 강의에 몰두하신다. 학생들은 강의대목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수업에 몰두하는 강의실 분위기가 기억에 새롭다.

  필자는 1975년 3월부터 석사학위 과정 학생으로 선생의 연구가족이 되었다. 필자가 만 29세 되는 때인데, 군복무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 때문에 학부 졸업이 매우 늦어졌다. 물론 선생께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게 만 36세가 되는 해이니 이보다 훨씬 이르지만 만학으로 공부에 뛰어든 사실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30세가 넘으면 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업할 수 없다는 취업제한 규제가 있었다. 고민 끝에 결국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였는데, 여러 가지로 유사하게 선생의 뒤를 잇게 되었으니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화학과에는 우수한 교수가 여러분 있었지만 유독 선생을 택한 이유는  선생께서 만학으로 공부하였다는 사실이 필자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개월 후에 선생께서 안식년 휴가를 떠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실망하였다. 선생께서는 직접 지도하지 못하고 1년씩이나 떨어져 있게 됨을 미안하게 생각한 나머지 정부가 개최하는 ‘광복 50년 기념 과학전람회’에 페놀프타레인 등 4가지 지시약을 출품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면 학위수여가 가능하다는 제안을 하였다. 필자는 이 프로젝트를 4개월 만에 끝내고 나서 선생께 이 프로젝트에 관계없이 주된 프로젝트인 ‘환원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역으로 제안하였더니 ‘혼자서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며 흔쾌히 승낙하셨다. 그리고는 출국 전 짧은 기간 동안 필자가 스스로 연구할 수 있도록 실험기술을 가르쳐 주셨다.

  선생의 부재중에도 서로 팩스로 연구결과를 보고하며 지도를 받는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하여 선생의 귀국 전에 학위논문 연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연구제목이 바로 ‘Reduction of Organic Compounds with Lithium Borohydride'로, 혼자 스스로 이루어 놓은 연구결과이다. 선생께서는 미국 Brown연구실에서 몸소 실험을 수행하면서 제자 연구를 지도하는 등 한 시도 지체함이 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시는 열정에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선생께서는 안식년 휴가 중에 5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 발표하는 엄청난 연구업적을 달성하고 1976년 8월에 귀국하였는데, 귀국 후의 연구의욕은 한층 더 강해지셨다. 선생께서 첫 번째 안식년 휴가 (1975년 8월부터 1년간) 중  Brown 교수 연구실에서 행한 ’Development of Chiral Isopinocampheylboranes and Their Application to Asymmetric Hydroboration' 연구는 그 후 Brown 교수가 이룩한 키랄 붕소화합물을 이용한 비대칭 합성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반백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밤늦도록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선생의 생활이 당시 유학 중이던 젊은 과학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그들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이어서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제자 중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연속해서 수학한 최초의 제자로서 가장 오랫동안 선생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그 분의 연구철학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선생은 아침에 출근하면 실험실에 들러 새로운 연구결과가 있는지를 점검하곤 한다. 학생으로서는 이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밤늦도록 연구한 결과에 만족스러워 하시는 선생의 모습에 덩달아 신이나 또다시 밤늦도록 때로는 실험실에서 잠을 자며 연구하는 횟수가 늘어나곤 하였다. 필자 자신도 연구결과에 매우 기뻐하시는 선생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가 3년 동안의 박사학위과정 시절에 실험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연구한 날이 몇 날이나 몇 달이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다.  선생과 제자가 이처럼 죽이 맞아 연구에 몰두할 수가 있는지 필자 자신도 의아스럽기만 하다. 연구하다 지쳐있는 필자에게 ‘진순 군, 삐루(beer의 평안도식 발음) 먹으러 가자’며 다정하게 술집으로 이끌어 가시는 모습을 그려보며 그 때가 그리워진다.

  사실 1977년부터 1979년 말까지 필자가 박사학위과정을 수행한 시기가 선생의 독자적인 연구가 명성을 얻게 되는 밑바탕이 된다. 알루미늄과 붕소의 수소화물은 습기나 공기 중 산소에 매우 민감한 화합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고 다룰 수 있는 고도의 실험기술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석사과정 중에는 이러한 실험기술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어 만족스러운 실험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는 게 보통이다. 고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연속으로 수행한 필자의 경우에는 보다 가치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테마를 다룰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연구에 필수적인 연구기구가 제대로 구비된 대학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서강대학교는 국제 예수회 재단(특히 미시간 교구)의 원조로 국제 공인된 ‘파이렉스 유리기구’를 지원 받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험실 연구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실험결과를 분석할 수 있는 분석기기가 없어서 혜화동에 있는 국립공업연구소나 홍릉에 있는 원자력연구소를 찾아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기체크로마토그래프(GLPC)를 잠깐씩 빌려 쓰는 수모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국내외에서 선두적인 연구실로 명성을 얻게 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필자는 full-time으로 연구실에 체재하면서 연구실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석사학위 과정 학생들이 하나 둘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연구팀이 형성되고 그룹의 연구토론회도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분석기기도 하나 둘 장만할 수 있어 기본적인 연구를 하는데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의 뒤를 이어 후배들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었다. 필자는 그 어려운 연구여건을 이겨내고 드디어 1979년 말에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통과하였다. 제목은 ‘Selective Reduction of Organic Compounds with Borane-Lithium Chloride (1: 0.1) System' 이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닥에서 시작하여 오직 연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으로 새로운 화학적 사실을 밝혀낸 눈물어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1980년 2월 필자가 영남대학교 화학과에 교수로 채용되어 실험실을 떠난 후에도 그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연이어 수학하는 제자들(조병태, 경영수, 오인환, 김관응, 김근풍, 박경배, 정경훈, 최경일 등)이 줄을 잇게 되어 연구는 날로 활성화되고 연구실 명성은 더욱 자자해지게 된다.

  필자는 1982년 8월부터 선생의 지도교수인 Brown 교수 연구실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생의 지도교수에게 제자의 제자인 내가 직접 지도를 받는다는 게 예의상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주저하였기 때문에 선생에게 직접 추천을 해 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Brown 교수에게 필자 자신을 소개한 경력서와 함께 연구신청서를 직접 보냈다. Brown 교수는 흔쾌히 승낙하셨고, 이 사실을 나중에 선생에게 알렸다. 선생께서도 아마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제자가 제대로 연구를 하여야만 선생의 체면이 설 수 있을 터인데 하는 걱정 반 희망 반의 상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선생의 제자가 Brown 교수 연구실에서 훌륭하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됨으로써 후속 타자에게도 용기를 불어 넣어주게 되었다. 후에 선생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병태 및 김기원 박사가 필자의 뒤를 잇게 된다.

  필자가 Brown 교수 연구실에 합류한 지 1년이 지난 1983년 8월에 선생께서 다시 두 번째 안식년 휴가를 동 연구실에서 보내기 위해 방문하였고 필자와 함께 1년 동안 공동연구를 하게 되었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이미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 발표하였기 때문에 선생과 보다 차원 높은 연구논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Brown 교수는 수시로 해외여행을 하였고 또한 수많은 연구실 제자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선생의 방문은 필자로 하여금 심적 안정감을 갖게 하여 보다 여유롭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이룩한 연구 중 가장 괄목한 결과는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공동 발표한 ‘Exceptionally Facile Reduction of Acyclic and Alicyclic Carboxylic Acids to Aldehydes by Thexylchloroborane-Dimethyl Sulfide'이다. 이 논문은 이제까지 유기합성분야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해결한 괄목할만한 결과를 보고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화학회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C & E News(Chemistry and Engineering News)에 최우수 연구결과로 소개되었다. 자연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안정한 탄소산화물인 카복실산 자체를 가장 유용한 화합물인 알데하이드로 직접 전환할 수 있는 이 환원법은  유기합성 분야에 있어 매우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주요 연구결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연구를 할 때 참으로 난처했던 일화가 생각이 난다. 알데하이드 수득률은 기체크로마토그래프를 이용해서 분석하는데, 똑 같은 샘플을 분석할 때마다 수득률에 큰 차이가 나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곤 하였다. 물론 샘플 보관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어 산소에 민감한 화합물인 알데하이드가 카복실산으로 산화되어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참으로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분석기기가 정밀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혼자서 고민하다 이 문제를 선생과 논의하게 되었다. 선생께서는 생성물을 기기로 분석하지 말고 안정한 유도체인 하이드라죤 화합물로 전환한 후, 그 무게로 수득률을 측정하여 발표하는 게 보다 신뢰성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셨다. 유기합성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이 연구가 발표되면 화학자들이 즉각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므로 보다 실질적인 연구자료가 화학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선생의 판단에서 였다. 필자는 활용적인 면을 고려하여 알데하이드 생성물을 직접 손에 얻을 수 있는 분리 방법을 추가로 개발한 다음에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선생의 조언에 의해, 연구하기 쉬운 방법을 배제하고 결과를 이용할 화학자의 편리를 위한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완벽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2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지만 정말 선생만이 내릴 수 있는 세심하고 완벽한 결정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 선생께서 옆에 계시지 않아 이러한 조언을 얻을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선생께서는 체재기간 중에 짬을 내어 ’What is the best reducing agent?' 라는 제목으로 유기 작용기 별로 어떠한 환원제가 가장 효율적인가를 총 정리하는 작업을 마쳐 화학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매우 유용한 자료집을 완성하였다.

  1984년 8월에 귀국한 선생은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연구실은 더욱 활성화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국내외 심포지엄에 직접 논문을 발표하여 ‘선택환원’ 분야에서의 국제적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고한 위치를 견지하였다. 정년퇴임 1년을 앞둔 1992년 4월 초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 203차 미국화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 ‘Sodium Diethylpiperidinohydroaluminate. A New Reducing Agent'가 대표적인 예이다. 발표내용 또한 C & E News에 기사화 되었을 정도로 이 분야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선생께서는 1990년도에 발족된 ‘한국과학재단 지원 우수연구센터’의 하나인 ‘유기반응센터’를 조직하였다. 선생 본인이 소장을 맡고 강재효 (서강대학교), 강성호 (한국과학원), 김관수 (연세대학교), 김성각 (한국과학원) 서정헌 (서울대학교), 심상철 (한국과학원), 이은 (서울대학교), 이종건 (부산대학교), 정봉영 (고려대학교), 차진순 (영남대학교) 등이 참여하였다. 사실 우리나라 유기화학 분야의 내노라하는 대표격 학자들의 집단이었다. 이 센터는 매 3년마다 실적을 평가하여 9년까지 2회 연장할 수 있는 대형사업으로 우리나라 유기화학 분야의 연구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정부의 과감한 수월성 위주 프로젝트이다. 센터의 연구원들은 매우 우수한 연구성과를 기록하여 최대 유지기간인 9년을 채우는 큰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센터가 위치하는 서강대학교 화학과는 질량분석기, 핵자기 분광기 등 그 당시에는 국내에 몇 대밖에 없는 최첨단 화학기기를 구비하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연구 시스템이 형성된 셈이다. 선생께서는 이 센터가 종료되는 1998년 말까지 계속 소장을 맡아 한국 유기화학 분야의 중추적 연구집단으로 성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아울러 국내 유기화학 연구를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 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필자도 이 센터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연구지원이 거의 전무한 낙후된 지방 사립대학교에서도 국제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사실 9년간에 걸쳐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당시 어려운 연구비 지원 상황에서는 황금알을 얻은 것과도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사용하기에 충분한 연구용 시약과 연구기구를 장만할 수 있었고, 아울러 이러한 연구여건이 구비되어 있다는 소문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면서 대학원 학생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필자의 연구경력이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선생께서 제자를 도와야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결정이 숨겨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필자가 이 분야의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된 바탕을 선생께서 마련하여 주신 것이다. 선생께서도 1993년 정년을 맞이하였지만 계속적으로 학생을 지도하면서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센터의 소장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뒤에 열거한 연구 업적에 정년 후에도 계속적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센터가 문을 닫는 마지막 해인 1998년도에도 여러 편의 논문이 게재 발표된 것이 바로 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주위의 환경이 선생으로 하여금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 또 한편으로는 선생 스스로 이러한 행운을 거머쥐고 태어난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료 연구자들보다 시작이 느렸고 여건도 좋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앞서 갈 수 있었음은 행운뿐만 아니라 태어난 운명이 함께 했을 것이다.

  선생께서는 센터 소장 직을 마친 후에도 서강대학교 연구교수로 연구활동을 계속하시면서 대학원 제자를 키웠으며 2005년 7월 15일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어 영면하실 때까지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봉사하셨다. 아래에 동료 학술원 회원인 김용해 교수께서 기고한 ‘추모사’ 원본을 수록하였는데, 짧은 글이지만 선생의 일생과 업적을 일목요연하게 조명한 내용으로 보관할 가치가 있는 글이라 판단된다.

삶의 자세 및 인간적인 면모

  선생은 선천적인지 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매우 과묵한 성격으로 자신의 과거나 가족에 대해 거의 말씀을 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색도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필자 자신도 선생의 어릴 적 생활상이나 부모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러나 경성대학 예과에 진학하기 위해 가족이 살고 있는 평양을 떠나고 부터는 공산정권의 출현과 6.25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생이별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며 학업을 마쳐야 했고 홀로 역경을 이겨내며 인생을 개척해야만 하였다. 매사에 세밀하고 계획적일 뿐만 아니라 검소한 생활습성은 아마 이러한 과거사로부터 자연스레 형성된 게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선생의 강의는 간결하고 명쾌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엄격하지만 자상한 지도방식은 학생 스스로 선생을 찾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학원 연구실에는 학생 지원이 끊어지지 않아 항상 정원을 초과하곤 한다. 역경을 이겨낸 인생체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어려움을 잘 보살펴 주기 때문이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유별나다고 할 정도이다. 제자들의 길흉사에는 반드시 참석하시고 결혼 주례도 도맡아 해 주신다. 특히 학위를 받고 실험실을 떠나는 제자들에게는 하나같이 장래를 위한 안정된 직장을 알선해 주거나 해외유학을 추천해 준다. 선생의 지도아래 석사학위를 받은 제자들이 해외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우가 유별나게 많은 점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연전에 일본 Hokkaido대학교의 A. Suzuki 교수(2010년 노벨화학상)가 필자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Professor Yoon has spread his students all over the world !' 사실 세계 도처에서 선생의 제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선생의 제자들은 매년 여름에 ‘Boron Lab Workshop'을 개최한다. 선생을 모시고 제자들이 가족과 함께 참가하는 연례행사이다.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주기적으로 모이게 하여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일종의 가족분위기의 모임이지만, 이 모임에서 빠뜨리지 않고 반드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 한 가지 있다. 즉, 학교에 있거나 연구소에 근무하거나 간에 각자의 연구테마나 종사하는 일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서로가 한가족 같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생께서는 제자들의 발표와 논의 과정을 귀담아 들으시고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논평함으로써 제자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역할을 담당하신다. 제자들과 어울려 약주를 드시면서 그들의 연구세계나 사회적 위치가 날로 성장하는 모습에 기뻐하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필자는 선생과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을 가깝게 지냈지만,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나쁘게 비평하는 언사를 한마디도 들은 기억이 없다. 물론 자신이나 가족의 자랑도 들은 적이 없다. 가족을 위한 사심이나 욕심도 없는 듯하다. 선생 스스로 경쟁에 뛰어든 적도 없다. 세월을 조용히 기다리며 기회를 낚는 듯한 생활을 하면서 오직 꾸준하게 연구에만 몰두하셨다. 학자로서 일종의 중용의 길을 걸어오신 듯하다. 그러나 단 하나 선생께서 피력한 스승 Brown 교수에 대한 논평 한마디가 기억이 난다. ‘노벨상 수상자를 조사해 보면 수상한 후에도 연구에 몰두하는 경우가 몇 %에 불과한데 Brown 교수는 수상 후에 더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고 있다.’ 선생 자신이 스승의 연구태도를 그대로 이어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논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주위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있었다. 동료 교수나 주위분들과의 인화감도 매우 깊다. 선생께서 동료 교수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1977년부터 무려 5년간 이공대학 학장직을 수행한 사실도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유별나게 자신을 내세운 적도 없는데 과학계의 주요 상훈을 두루 수상하고 학술원 회원으로도 선정된 것은 단지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선생의 인품에 기인된 요소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생께서는 한국의 화학기술의 국제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특히 선진국과의 기초연구 수준의 격차에 대해 우려를 하고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심하셨다. 선생께서 Purdue대학교 Brown 교수 연구실에서 학위과정 연구를 하고 있을 때 일본 Hokkaido대학교 Suzuki 교수가 ‘박사 후 연수생’으로 2년간 합류한 적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과의 학술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기초연구 수준을 따라 가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Suzuki 교수에게 연례적인 ‘공동 유기화학 심포지엄’을 개최할 것을 논의하고 두 분이 공동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한다. 국내외적인 사정에 의해 시기가 늦어졌기는 하나 1980년에 들어서 ‘제 1회 한-일 공동 유기화학 심포지엄’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선생의 집념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매 2년마다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열리는 동 심포지엄은 선생께서 세상을 뜨셨지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소원했던 한-일 관계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 화학자 간의 우의를 돈독해 하고 학문교류를 증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한-일 간에 여타 다른 학문의 교류를 유도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동 심포지엄의 개최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국내 참석자들의 연구수준이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는데, 초창기부터 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왔던 일본 학자들이 ‘처음에는 연구수준의 격차가 컸으나 이제는 거의 대등해 져서 놀랍다’고 이구동성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심포지엄이 국내의 학문수준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전적으로 선생이 미래를 바라보며 대처하는 안목과 이를 위해 매진하는 집념이 얼마나 원대하고 체계적이었나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선생께서는 거의 모든 국내외 주요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직접 연구결과를 발표하곤 한다. ‘유기화합물의 선택환원’ 분야에서 독보적인 국제적 명성을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의 학문적 수준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연구에 매진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선생께서는 고등학교 졸업 시까지 일본제국 시대 하에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본어를 잘 구사하실 것으로 짐작된다. 선생은 학문적 교류 차원에서 일본인과 자주 접촉하고 가깝게 지내는 일본인들이 많은데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물론이고 사적으로 대화를 할 때에도 한 번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일본 제국시대의 뼈아픈 과거사에 나쁜 감정이 마음속에 쌓여 있지만,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낮은 과학수준을 하루 빨리 향상시키는 것이다라는 신념이 앞서 있어 이러한 개인 감정은 가슴 속에 묻어 두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선생께서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이끌어 가면서 일본 과학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과학자로서 품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기품 있는 모습으로 받아 들여진다.

  선생께서는 학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1978년도에는 대한화학회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간사장으로 봉사하였고, 대한화학회 이사 및 간사에 이어 1989년도부터 2년간 대한화학회 회장을 맡아 학회를 크게 발전시키고 학회 회원의 학술활동을 증진시키는데 큰 업적을 남기셨다. 필자가 박사과정에 입학한 선물로 대한화학회 종신회원 입회비를 손수 납부해 주셨는데, 이는 선생께서 제자에 대한 학문적 배려가 얼마나 깊고 자상하셨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선생께서 유기반응센터 소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있을 때, 필자는 지방에서 나름대로 연구에 몰두하다보니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 훌륭한 연구업적과 과학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국민훈장 목련장, 1990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1993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1995년 인촌상을 수상하셨다.

  필자가 대한화학회 회장직을 맡아 봉사하던 2007년 11월에 선생에게 ‘팔순 기념 심포지엄’을 포함한 ‘팔순 잔치’를 열어 드렸다. Brown 교수가 자신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하여 전세계에 흩어 있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축하 파티를 열었을 때 필자도 참석한 바 있는데, 이때 선생에게도 이러한 행사를 열어 드려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어 이를 실행한 것이다. 필자를 필두로 여러 제자들이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선생께서는 흘러간 세월의 추억이 담긴 사진 등 자료를 모아 지난 생애를 자상하게 소개해 주셨다. 평양고보 졸업식 때 일본제국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 그 당시의 대동강 철교 사진, 서울에서 유학 시절 소지하고 있던 서울시민증, 서울로 피난 온 평양고보 동창생들의 모임 사진 등을 소개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쟁 와중에 제주도에 있는 오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께서 자신의 과거사를 이처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관심 있게 들었는데, 이게 마지막 기회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미리 준비성이 있었으면 선생의 마지막 말씀을 녹음해 두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과 애석함이 남아 있다. 많은 제자들이 참석해 선생의 팔순을 축하하며 건강하심을 기원해 드렸다. 그러나 그 당시 선생의 모습이 몹시 초췌하고 쇠약해 있었는데, 필자를 포함해 모든 제자들이 선생께서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 주기적으로 수혈까지 하셨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신의 건강을 끝까지 숨기며 낌새조차 보이지 않으신 선생의 마음 씀씀이에 머리가 숙여짐을 막을 수가 없다. 안타깝기만 한 심정이다.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멀리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유학생활을 하던 중 6.25 사변이 터져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홀로 끼니를 이으며 학업을 마친 선생이다. 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만학의 나이로 미국유학을 떠나게 되고, 이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되어 세계적인 과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오로지 연구에 몰두하며 제자들을 길러내니 이게 국가를 위한 가장 바르고 위대한 길임을 몸소 보여 주셨다. 이게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장 바람직한 과학자의 상이고 스승의 길임을 느끼게 한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결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아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후학들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새삼 되새겨볼 한 과학자의 일생이다.


업적 및 의미

  선생의 업적은 과학자로서 수행한 연구업적과 교육자로서 양성한 훌륭한  과학인재로 대별할 수 있다.

  연구업적의 시작은 Purdue대학교에서의 유학시절인 1964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도교수인 Herbert C. Brown 교수는 가수소화붕소 첨가반응(Hydroboraton)과 알루미늄과 붕소수소화물을 이용한 선택환원(Selective Reduction with Aluminum or Boron Hydrides) 분야를 개척하는 독보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선생은 이중 선택환원 분야를 도맡아 수행한 연구주체이었다. Brown 교수는 모든 연구에서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한 계통적 연구(Systematic Study)라는 연구방식과 연구철학을 지니고 있어 체계적으로 한 가지씩 철두철미하게 접근하는 연구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야만 숨어있는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선생께서도 이 연구철학을 받아들여 실험에 적용할 56가지의 유기화합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 화합물 하나하나에 새로이 개발한 금속수소화물을 반응시켜 그 환원특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연구방식을 고안하였다.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채택하여 널리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이 계통적인 연구방식은 연구자에게는 매우 힘들고 지루함을 주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한 시약에 대해 56가지의 화합물 세트를 반응시간에 맞추어 일일이 반응속도를 측정해야 하고, 아울러 사용되는 모든 화합물과 용매를 순수한 상태로 정제하고 보관해서 사용해야만 그 실험 자료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실험이 이루어지면 그 금속수소화물의 환원성을 조목조목 분석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이 수소화물을 어떠한 유기 작용기에 적용할 수 있는 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루한 과정을 통하여 환원성이 밝혀진 금속수소화물은 즉각적으로 환원반응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계통적으로 얻은 연구결과이므로 반응시간에 따른 반응 진행정도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붕소 및 알루미늄 수소화물을 이용한 환원은 이제까지 이용해 온 고전적 환원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새로운 환원법으로 여러 가지 유기작용기를 가진 한 유기화합물에서 어느 특정한 유기작용기를 선택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선택환원’의 길을 열어 놓게 되었다. 고전적인 환원계로는 어떤 유기작용기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화학선택적 반응을 이룰 수 없다. 환원반응은 화학반응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과정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결과는 즉각적으로 화학자들에게 응용되고 적용된다. 화학자가 앞으로 다루어야 하는 화합물의 종류나 범위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다양해지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환원반응 연구도 끝없이 확장되어야 하고 더 탁월한 선택성을 지닌 환원제를 개발하여야만 된다.  따라서 선생이 개발한 연구과정은 화학에 있어 끝없이 해결해야할  ‘선택환원제 개발’이라는 연구과제를 개척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몇 가지 금속수소화물에 대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lithium aluminum hydride(LiAlH4)는 모든 화학자가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환원제로서, 1966년도에 J. Am. Chem. Soc.에 그 환원성이 발표되었다. 그 당시 이 시약은 탄소-탄소 이중결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기작용기를 환원시키는 가장 강력한 환원제였다. aluminum hydride(AlH3)는 염기성 환원제인 LiAlH4에 대응하는 산성을 띠고 있는 환원제로서 그 환원특성이 LiAlH4와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1966년도에 J. Am. Chem. Soc.에 그 환원성이 발표). 한편 붕소수소화물인 diborane-THF 용액(BH3-THF)은 Al원자보다 작은 B원자 때문에 알루미늄 수소화물보다 선택성이 크게 증가하며, 아울러 상대적으로 온화한 환원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카복실산을 알코올로 전환하는 데는 BH3-THF이 알루미늄수소화물보다 훨씬 온화한 상태에서 보다 좋은 수득률을 제공한다. 이러한 계통적인 연구로부터 얻은 실험자료를 비교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목표에 가장 합당한 시약과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LiAlH4가 갈력한 환원성을 보이고 있는 반면,  NaBH4는 케톤이나 알데하이드만 환원할 수 있는 매우 온화한 환원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실제 유기화합물의 환원에


              
              LiAlH4                                NaBH4

          강력한 환원제                          온화한 환원제

 

있어 요긴한 사항은 양쪽 끝의 두 시약 사이에 위치하는 적당한 세기의 환원성을 지닌 환원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다양한 구조의 화합물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성질의 환원제 개발이 절실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테마가 바로 ‘선택환원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선생은 우선  BH3에 여러 가지 R기를 도입한 RBH2, R2BH, 9-BBN 등을 개발하고 이들 유도체의 환원성이 모체인 BH3의 환원성과 다를 뿐만 아니라 선택성이 크게 증가함을 밝혀냄으로써 선택환원의 폭을 넓혀 가기 시작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LiAlH4나 AlH3에 여러 가지 치환체를 도입하여 환원성의 세기를 감소시키거나 NaBH4에 R기를 도입하여 환원성의 세기를 증가시키는 방법의 기초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potassium triphenylborohydride와 sodium diethylpiperidinohydroaluminate 등이 개발되었다. 이 시약들은 화학선택성, 위치선택성 및 입체선택성이 뛰어난 환원제로서 카복실산 유도체로부터 알데하이드를 합성하거나 고리 케톤을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알코올로 전환하는데 매우 우수한 선택성을 보이고 있다. 선생의 또 한 가지 획기적인 업적은 자연에서 얻은 α-pinene에 가수소화반응을 하면 얻을 수 있는  monoisopinocampheylborane과 diisopinocampheylborane의 광학순도를 99%까지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이 시약을 이중결합을 가진 올레핀 화합물에 비대칭적으로 가수소화붕소 반응을 시켜 키랄성 알코올을 합성하는 기초연구를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새로운 연구영역인 ‘비대칭 가수소화붕소 반응(Asymmetric Hydroboration)' 분야를 개척한 업적을 거두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전세계적인 선두연구팀들이 너도나도 키랄성 화합물 합성법 개발에 뛰어들고 있을 정도로 화학분야에서 가장 매력적인 연구분야이었다. 이러한 개척적 연구를 통해 Brown 연구팀이 붕소화합물을 이용한 비대칭 합성법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Brown 교수가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널리 퍼졌을 정도이었다.

  이러한 연구발표에 따라 세계의 여러 연구자들이 이 분야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며 연구에 모여들게 한 선도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필자도 선생의 뒤를 이어 이 분야의 연구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선택환원’ 연구분야에 있어 선도적인 쌍두마차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업적은 바로 교육자로서의 후학 양성에 있다. 선생은 재임 기간 중 10명의 박사학위 수여자와 51명의 석사학위 수여자를 배출하였다. 10명의 박사학위 취득자  중 3명은 교수로 재임 중이고, 7명은 연구소나 산업현장에서 핵심적인 요직을 맡고 있다. 석사학위 취득자 중에는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거나 유학 중인 제자가 15명에 이르고 있다. 사실 제자들을 전세계에 퍼뜨려 첨단학문을 받아들이는 교두보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선생의 그 숭고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구 업적

1. Brown, H. C.; Weissman, P. M.; Yoon, N. M.: Reaction of Lithium Aluminum Hydride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J. Am. Chem. Soc. 1966, 88, 1458.

2.  Brown, H. C.; Yoon, N. M.: Reaction of Aluminum Hydride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Comparison of the Reducing Characteristics of Lithium Aluminum Hydride and Its Derivatives
J. Am. Chem. Soc. 1966, 88, 1464.

3. Brown, H. C.; Yoon, N. M.: The Borohydride-Catalyzed Reaction of Diborane with Epoxides. The Anti-Markovnikov Opening of Trisubstituted Epoxides
J. Am. Chem. Soc. 1968, 90, 2686.

4. Yoon, N. M.; Brown, H. C.: Exploration in Some Representative Applications of Aluminum Hydride for Selective Reductions
J. Am. Chem. Soc. 1968, 90, 2927.

5.  Brown, H. C.; Yoon, N. M.: Reaction of Diborane in Tetrahydrofuran with Styrene Oxide and Related Epoxidesin the Presence of Boron Trifluoride. A Convenient Anti-Markovnikov Opening of Such Epoxides
Chem. Commun. 1968, 1549.

6. Brown, H. C.; Heim, P.; Yoon, N. M.: Reaction of Diborane in Tetrahydrofuran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J. Am. Chem. Soc. 1970, 92, 1637.

7. Brown, H. C.; Bigley, D. B.; Arora, S. K.; Yoon, N. M.: Reaction of Disiamylborane in Tetrahydrofuran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J. Am. Chem. Soc. 1970, 92, 7161.

8. Kim, J. S.; Huh, T. S.; Yoon, N. M.: Two Phase Oxidation of Aldehydes with Chromic Acid
J. Korean Chem. Soc. 1971, 15, 65.

9. Chung, J. S.; Yoon, N. M.: Two Phase Reduction of Carbonyl Compounds with Sodium Borohydride
J. Korean Chem. Soc. 1971, 15, 117.

10. Brown, H. C.; Heim, P.; Yoon, N. M.: Selective Reductions. XVII. Reaction of Thexylborane in Tetrahydrofuran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Comparison of the Reducing Characteristics of Lithium Diborane and Its Alkyl Derivatives
J. Org. Chem. 1972, 37, 2942.

11. Yoon, N. M.; Lee, H. J.; Chung, J. S.: Reaction of Representative Organic Compounds with Sodim Borohydride in the Presence of Aluminum Chloride
J. Korean Chem. Soc. 1973, 17, 275.

12. Yoon, N. M.;  C. S. Park.; Brown, H. C.; Krishnamurthy, S.; Stoky, T. P.:  Selective Reductions. XIX. The Rapid Reaction of Carboxylic Acids with Borane- Tetrahydrofuran. A convenient Procedure for the Selective Conversion of Carboxylic Acids to the Corresponding Alcohols in the Presence Other Functional Groups
J. Org. Chem. 1973, 38, 2786.

13. Yoon, N. M.; Kang, J.: Selective Reduction of α,β-Epoxyketones with Zinc Borohydride
J. Korean Chem. Soc. 1975, 19, 355.

14. Yoon, N. M.; Kang, J.: Selective Reduction of Ketoesters with Zinc Borohydride
J. Korean Chem. Soc. 1975, 19, 360.

15.  Yoon, N. M.; Lee, H. J.; Kim H. K.; Kang, J.: Selective Reduction with Zinc Borohydride Reduction of α,β-Unsaturated Aldehydes and ketones
J. Korean Chem. Soc. 1975, 19, 468.

16. Yoon, N. M.; Lee, h. J.; Kang, J.; Chung J. S.: Zinc Borohydride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J. Korean Chem. Soc. 1976, 20, 59.

17. Brown, H. C.; Krishnamurthy, S.; Yoon, N. M.: Selective Reductions. XXI.
9-Borabicyclo〔3.3.1〕nonane in Tetrahydrofuran as a New Selective Reducing Agent in Organic Synthesis. Reaction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J. Org. Chem. 1976, 41, 1778.

18. Brown, H. C.; Yoon, N. M.: Hydroboration 44. Diisopinocampheylborane of High Purity. Asymmetric Synthesis via Hydroboration with Essentially Complete Asymmetric Induction
Israel J. Chem. 1977, 15, 12.

19. Brown, H. C.; Yoon, N. M.; Mandal, A. K. Facile Displacement of Tetramethylethylene from Thexylborane-Triethylamine by Treatment with Olefins. A Convenient Synthesis of Monoalkylborane Derivatives
J. Organometal. Chem. 1977, 135, C10.

20. Yoon, N. M.; Cha, J. S.: Selective Reduction of with Lithium Borohydride. Reaction of Lithium Borohydride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J. Korean Chem. Soc. 1977, 21, 108.

21. Brown, H. C.; Yoon, N. M.: Monoisopinocampheylborane. A Newe Chiral Hydroborating Agent for Relatively Hindered Trisubstituted Olefins
J. Am. Chem. Soc. 1977, 99, 5514.

22. Yoon, N. M.; Cha, J. S.: Effect of Lithium Chloride on the Borane Reduction of Organic Compounds
J. Korean Chem. Soc. 1978, 22, 37.

23. Yoon, N. M.; Cha, J. S.: Selective Reduction of carbonyl Compounds with Lithium Borohydride and Borane-Lithium Chloride(1: 0.1) in Tetrahydrofuran
J. Korean Chem. Soc. 1978, 22, 259.

24. Mandal, A. K.; Yoon, N. M.: Anomalies in the Asymmetric Hydroboration of Olefins with the 1/1 Adduct of (+)-α-Pinene and BH3-THF
J. Organometal. Chem. 1978, 156, 183.

25. Yoon, N. M.; Cho, B. T.: Rapid Reduction of Carboxylic Acid Salts with Borane in Tetrahydrofuran
Tetrahedron Lett. 1982, 23, 2475.

26. Cho, B. T.; Yoon, N. M.: Fast Deoxygenation of Sulfoxides with Borane-Triphenyl Borate (1: 0.1) System
J. Korean Chem. Soc. 1982, 26, 340.

27. Cho, B. T.; Yoon, N. M.: Convenient Procedure for the Reduction of Carboxylic Acids via Acyloxyborohydrides
Bull. Korean Chem. Soc. 1982, 3, 149.

28. Brown, H. C.; Mandal, A. K.; Yoon, N. M.; Singaram, B.; Schwier, J. R.; Jadhav, P. K.: Exploration of Synthetic Procedures for the Preparation of Monoisopinocampheylborane
J. Org. Chem. 1982, 47, 5069.

29. Yoon, N. M.; Cha, J. S.: Selective Reduction of Racemic 1,2-Butylene Oxide with Diisopinocampheylborane in the Presence of Lithium Chloride
Tetrahedron Lett. 1982, 23, 5181.

30. Cho, B. T.; Yoon, N. M.: Selective Reduction of Halides with Lithium Borohydride in the Multifunctional Compounds
J. Korean Chem. Soc. 1983, 27, 46.

31. Pyun, C.; Son, J. C.; Yoon, N. M.: Reaction of Lithium n-Butylborohydride with Selected Organic Compounds Containing Representative Functional Groups
Bull. Korean Chem. Soc. 1983, 4, 3.

32. Yoon, N. M.; Cha, J. S.; Park, W. S.: Effect of Trialkylborane on the Stereochemistry of Ketone Reduction with Lithium Borohydride
Bull. Korean Chem. Soc. 198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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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Nah, J. H.; Kim, S. Y; Yoon, N. M.: Reductive Amination of Ketones and Aldehydes with Hydrazine Using Borohydride Exchange Resin (BER)-Nickel Acetate in Methan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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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Lee, S. Y.; Cho, B. T.; Yoon, N. M.: Reductive Amination of Aldehydes and Ketones with Dimethylamine Using Borohydride Exchange Resin (BER).
Bull. Korean Chem. Soc. 1998, 19, 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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